이얼록
처음 도전해 본 사업, 인액터스에서는 왜 실패했을까 본문
2021년, 인액터스라는 대학생 비즈니스 단체에서 처음 비즈니스를 해봤다. 대략 10개월 동안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사업계획서를 쓰고, 10개 가까이 되는 공모전에 참여하여 수상금 포함 약 300만 원의 지원금을 받았고, 망했다. 그 경험 이후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저는 창업은 아닌 것 같아요.'라고 말하고 다녔다. 그 뒤로 한동안은 비즈니스에 발도 담그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진심으로 이 경험에 appreciate하고 있다. 직장인들과 회사 밖 프로젝트에서 기획을 하고 있는데 인액터스에서 학생팀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배운 것들은 경력자들과 팀으로서 일을 하는 데에도, 기획자로서 사업을 보는 시각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학교에서 일회적인 결과물만 만들어내면 되는 '팀플'이나 기업 주관의 대외활동에 속해 주어진 활동들을 수행하는 것과는 달리, 돈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하고 1년 이상 장기간 지속 가능한 프로젝트를 하는 것이 인액터스에서의 일이었다.
이 글에서는 인액터스에서의 사업 경험을 회고하면서 이 실패 경험이 나에게 남긴 배움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아주 기초적인 태도에 관한 글이다.
그전에 잠시 인액터스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글로벌 대학연합 비즈니스 단체인 인액터스는 기업가 정신과 사회적 책임을 토대로 한 비즈니스 학생 단체이다. 동구밭, 끌림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기업들이 인액터스에서 시작되었다. 물론, 그런 경우보다는 대부분 나처럼 소소한 프로젝트 진행에 그친다.
내가 진행했던 프로젝트는 어르신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 A와 카페 사장님의 화장실 관리를 편하게 만들어 주기 위한 프로젝트 B 이렇게 2가지였다. (이 글에서는 프로젝트 A와 B를 왔다 갔다 하면서 언급할 예정이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은, 고객의 문제 정의
기업가 정신은 고객의 문제 정의부터 시작한다. 기업 채용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인재상에 '고객 중심'이라는 말이 쓰여 있고, '고객 경험'에 대해 떠드는 IT기업들은 이미 몇 해 전부터 'customer experience, CX'팀까지 만들어 운영한다. 그만큼 중요한 게 고객 관점이고 고객 관점에서 보려면 고객의 문제를 읽어야 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고객 관점이라는 것이 달성하기 어려운 방향성이라는 걸 인액터스를 하면서 깨달았다.
우선, 인액터스에 들어가자마자 OJT(신입교육)에서 고객의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기 위한 방법론부터 배웠다. 5whys 같은 프레임 워크를 가지고 비즈니스모델을 만들어 보는 실습도 했다. 그런데도 고객 관점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보다도 팀원들의 조급함 또는 공감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프로젝트A에서 우리가 정의한 문제는 노인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 부족 문제였다. 노인에게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서 질 좋고 안정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기 위한 수익모델을 찾는 데 집중했다. 그래야 어르신들을 불러 모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어르신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데는 소홀했다.
그러나 나중에 뒤늦게 관공서에서 소일거리를 얻어 일하고 계신 할아버지를 만나볼 기회가 있었는데, '매일 나가고 많은 돈을 벌어야 하는 그런 큰 일자리가 필요한 게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한 달에 두 번 정도 나가서 크게 힘 들이지 않고 청소를 하는 일이었는데 사람이 그렇게 많이 몰린다고 했다. 그러니 우리는 고객을 제대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했고 빨리 성과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조급함에 덜 중요한 것들에 집중했던 것이다.
또한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안정적인 노인 일자리 제공을 위한 비즈니스 모델을 처음부터 만들어 안정궤도에 올리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고 품이 많이 드는 일이 맞다. 당시 코로나19로 인해 노인 일자리와 복지를 담당하는 관공서의 활동에 제동이 걸렸던 게 큰 문제였는데, 중개자의 역할을 자처했더라면 더 빠르게, 직접적인 임팩트를 줄 수 있는 비즈니스를 해볼 수도 있었다.
고객은 어떤 사람인가요?
우리의 고객은 '노인'이 아니라 '소일거리가 될 만한 일자리를 필요로 하는, 신체가 건겅한, 60대 초반의 스마트폰을 즐겨 쓰는 노인'이어야 한다. 처음에는 단순히 '노인'을 고객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 '노인'의 니즈를 제대로 파악해 보고자 가볍게 진행했던 한 토이 프로젝트에서 고객 정의를 좁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학생 손자의 손에 이끌려 모인 어르신분들이 저마다 나이도 제각각이고 스마트폰을 사용하시는 레벨도 제각각이었던 것이다. 우리의 리소스로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는 최소한 스마트폰으로 연결될 수 있는 어르신이어야겠구나! 와 같은 것들을 그때 깨달았다.
이게 바로 유저 페르소나이다. 고객의 니즈와 페인포인트가 뭔지 알면 됐지, 고객이 몇 살이고 혼자 사는지 남편이 있는지가 그렇게 중요한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차피 모든 고객이 페르소나에 해당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러나 페르소나는 메인 커스터머가 우리 앱/웹 내에서 어떤 액션을 할지 생각하게 해주는 프레임이다. 서비스와 관련된 기능, 시장에 대한 결정을 내릴 때 '우리 고객이라면..'을 기준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데 도움을 준다. 여러 선택지들의 장단점을 놓고 갑론을박이 일어나도 결국 고객 관점에서 치명적이라 라면 많은 부분 주장에 힘이 실린다.
가설을 검증하려면 모니터 밖으로
데스크 리서치만으로는 고객의 니즈를 다 대변하지 못한다. 항상 논문, 기사, 통계 너머에 나타나지 않은 니즈가 있기에 직접 만나서 고객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 프로젝트 A에서 피봇팅을 한 이후, 프로젝트 B에서 우리의 새로운 고객은 카페 사장님이었다. 카페 사장님 중에서도 친환경 카페를 지향하는, 서울에서 개인 카페를 운영하는, 20~40대 사장님이 우리의 타깃이었다.
당시 우리가 정의한 문제는 '카페 사장님들은 카페 화장실을 관리하는 게 번거로울 것이다.'였다. 그 이유로는, 개인 카페는 상대적으로 위생에 민감한 여성들이 이용하는데, 액체비누는 세면대를 쉽게 지저분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이해관계자는 카페 이용 고객과 카페 사장님 두 계층이 있었다. 그에 따라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카페 이용 고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이 설문조사는 꽤나 잘 이루어져서 약 700명 가까이 되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결과도 가설 설정했던 것과 유사하게 나왔다. 그리하여 솔루션으로 고체 비누를 얇게 슬라이싱해주는 디스펜서를 제시했다. 제품 기획 및 제작을 위한 자문도 받았다.
그 뒤에 제품 설계서와 팀 소개서로 이루어진 PPT를 들고서 카페 사장님을 찾아갔다. 어렵사리 약 7곳 정도의 서울 카페 사장님과 대면과 서면으로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런데, 카페 사장님들은 화장실 관리의 어려움에 공감하면서도, 도입은 어려울 것 같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 이유는 1. 화장실의 경우 가게 밖 건물에 있는데, 이경우 해당 건물의 다른 사장님들과 공동으로 업체에 관리를 맡기는 경우가 많다.
1-1. 만일 카페 내부에 화장실이 있는 경우는, 대형 프랜차이즈처럼 큰 곳이 대부분이다.
2. 고체비누는 도난당할 우려가 있을 것 같다는 우려가 있었다.
즉, 우리가 생각한 문제가 고객의 실제 문제가 아닌 케이스였다. 프로젝트를 준비한 지 거의 2달이 지난 시점에 받은 결과표였다. 왜 이렇게 늦었을까. 다른 현실적인 제품 개발과 생산 여건들을 따지고 비즈니스 모델을 검토하느라 바빴다. 우선순위를 잘못 매겼다. 다 만들어서 시장에 내놨는데 아무도 안 쓰는 것만큼 처참한 일이 없다. 이런 일을 막으려면 두렵더라도 초기부터 고객의 목소리를 들어봐야 한다.
카페 액팅할 때 사진
3개월이나 지났는데도 아직 프로토타입 하나 없다고?
프로젝트가 이미 종료되고 난 뒤에 어디선가 본 아티클에 이런 말이 쓰여 있었다. 3개월이나 됐는데 프로토타입 하나 없다는 건 시장성을 검증해 보지도 않은 채 3개월이나 뭘 하고 있냐는 뜻이다. 이 말이 인액터스에서 프로젝트 A, B를 진행했던 과거의 나에게 하는 소리처럼 느껴져서 뜨끔했다.
당시 우리는 만들고자 했던 제품이 세상에 없던 제품이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설계 가능한지부터 소재, 생산까지 따져야 해서 MVP까지 몇 달이나 걸린다고 생각했다. 디스펜서 내부에 고체 비누가 들어있고, 대패칼이 내장되어 있어 사용자가 디스펜서 외부의 버튼을 누를 때 고체 비누 조각이 슬라이스 되어 나오는 제품을 개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때 재활용된 플라스틱을 사용해서 에너지를 최소화해 환경에 도움이 되고자 했다.
그러나 MVP 단계에서부터 친환경적인 소재, 대패칼의 작동원리를 갖춘 제품을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답은 '전혀 아니다'이다. 그보단 내부에 직접 썬 고체 비누 조각을 시중에 파는 디스펜서 안에 넣어 학교 화장실에 설치를 해서라도, 사람들이 이 제품을 어떻게 쓰는지를 확인해 봤어야 한다. 그랬으면 MVP 테스트까지 한 달도 안 걸렸을 것이다.
작년에 장애인들이 같이 즐길 수 있는 전시를 만든 프로젝트가 SNS 피드에 떴던 적이 있다. 보자마자 같이 일했던 팀원들에게 이것 보라며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가 진행해 보고자 한 유명 공모전에 제출했던 아이디어와 꽤 유사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어르신들의 필체로 '재미있게 살아라', '기왕에 태어났으니까 멋지게 살아봐' 같은 문구를 넣어 굿즈를 만드는 '신이어마켙'도 그랬다. 우리도 어르신들이 청년들에게 인생 상담해 주는 프로그램을 해보자! 하고 얘기했던 적이 있었다. 어르신들은 삶의 지혜가 풍부하니까 청년들에게 용기와 위로가 될 것이라는 논리였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러한 아이디어들 중 아무것도 실현하거나 상용화한 게 없고, 어떤 사람들은 해냈다.
'그들은 됐는데 우리는 왜 안 됐을까.' 몇 번 아쉬움이 든 적이 있다. 그러나 it's fair !! 우리는 생각만 하고 그들은 행동했기 때문이다. 당시 어렴풋이 우리 마음속에는 '젊은 사람들이 꼰대라고 생각하고 싫어하면 어떡해?'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공공기관에서 하는 하루짜리 축제에 작은 부스를 운영해 보더라도 learning by doing 했어야 했다.
마치며
결국 인액터스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를 종합적으로 돌아보면, 고객이 필요한 제품을 기획하지 못했고 액션이 느려서 실패했다. (여기에 더해 프로젝트 매니징, 팀워크 등의 이슈도 컸다. 이건 다음 글에서 다뤄보도록 하겠다.) 하지만 나에게 절대적인 교훈을 남겼다. 고객을 뾰족하게 정의할 것, 고객의 니즈를 제대로 검증할 것, 그리고 가설을 세운 뒤 빠르게 타깃 고객과 실험해 볼 것. 이후 나는 언제나 고객의 문제와 니즈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빠르게 실험해 인사이트를 얻는 데 공들이고 있다. 그래야 출시 이후 사람들이 사용하는 프로덕트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배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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